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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ngmooheo

한 유명한 미국인 설교가가 설교도중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에 대한 말씀을 했다. 그에 따르면, 이 현숙한 여인은 지금으로 말하면 하버드 대학교 MBA를 마 치고, 직장에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는 좋은 어머니이고, 남 편을 높여주는 현모양처라고 하면서, 자신의 아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면서 아내 자랑 을 늘어놓았다. 한국인 목회자라면 감히 강단에서 할 수 없는 말을 조금의 주저함도 없 이 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목회자는 다르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잠언 31장의 이 현숙한 여인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또한 앞에 나온 설교자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대부분의 교회와 목회자들의 해석이기는 하지만, 이 본문에 대한 해석은 주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여인이 가져야 할 “여성상의 기준” 혹은 “여성의 이상형”으로서 본문의 현숙한 여인을 해석하는 것이 고, 두 번째는 여성상이라고 하기 보다는 잠언전체에 흐르고 있는 “지혜” 자체를 의인화 시켜서 묘사하는 것이라고 하는 해석이다.


1. 여성상의 기준으로서의 “현숙한 여인”


잠언 31장에서 말하는 현숙한 여인과 그의 삶의 모습, 태도 그리고 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가정의 행복이다. 가정이 풍요해지고, 자녀들이 편안하며 남편 은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 진다. 이러한 여인은 스스로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혹은 자신 에 대해서 어떻게 느낄는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여인을 아내로 둔 사람, 어머니로 둔 자 녀들의 가정적 행복을 묘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대부분의 교회의 강단에서 외쳐진 내용이 라고 할 수 있겠다.

키드너가 그의 책에서 말하듯이 이 현숙한 여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덕목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여인 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교회 안에서 가르쳐 지고 있다. 키드너가 도달할 수 없는 범위 내에 있지 않다고 말한 이유는 그 여인이 가진 것이나 주어진 것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 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잠언 31장에 나온 여인의 가정 형편, 즉 그의 재 정, 종들, 무역,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 특권을 누리던 여인처럼 보인다.2) 현숙한 여인이라고 번역한 그 원어는 에셋하일이다. 현숙하다는 말은 “힘, 능력”을 의미한다. 직역을 하자면 “능력 있는 여자” 혹은 “힘 있는 여자” 혹은 “용 감한 여자”라는 의미가 되어 질 것이다. “능력”이라는 말의 하일은 대부분 남자에게 쓰여 진 말이다.

성경에서, 여자에게는 본문에 두 차례 쓰였고, 다른 곳에서 두 번 더 쓰였다. 하나는 룻을 표현하면서 쓰였고(룻 3:11) 또 다른 하나는 같은 잠언서에 나타 난다(잠 12:4)

이 능력 있는 여자, 현숙한 여인의 모습을 살펴보면, 남편에게는 신실하고, 믿을 만한 아내이며, 자녀들을 최선을 다해서 돌보는 훌륭한 어머니이다. 집에서 하는 모든 일 은 본인이 다 맡아서 한다. 양털과 삼을 가지고 하는 일, 베로 옷을 짓는 일을 한다. 여 종들을 관리하고 일을 맡기는 일도 그가 한다. 무역과 장사를 하는 여인이며, 밭과 포도 원을 사면서 지경을 넓히며 가정을 풍요롭게 하는 여인이다. 가정을 따뜻하고 안락한 곳으로 만드는 방석과 옷을 준비하는 일을 한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여인이며, 자선을 베풀 줄 아는 여인이기도 하다. 부지런하며, 지혜롭고, 선하다. 이 여인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뿐만 아니 라 비즈니스를 크게 하는 가정으로 보인다. 또한, 그 비즈니스는 남편보다는 아내에 의해 서 대부분 운영되어지는 듯이 보인다. 남편은 아내의 내조와 외조에 힘입어 그저 사회 적으로, 정치적으로 높은 자리에 앉게 되고, 존경받는 자리에 앉게 되는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23절).

이 여인의 위대한 점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혜로운 말씀, 그리고, 인애의 법을 말한다는 것이다. 또한 여호와를 경외함이 그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은 남편뿐만 아니라, 자녀에게도 칭찬을 받게 된다는 것이 잠언 31장에 나온 여인의 모습이다. 본문 잠언 31:10-31에 관한 시형을 분석하고 설명한 어떤 글에서는 이렇게 결론을 맺었 다.


"이러한 이상적인 여성상에 대한 인식이 히브리 사람들로 하여금 가정에 있 어서 여성의 역할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터득, 강조해 왔음을 잠언서 여러 곳 에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상적인 여성을 남성은 찾아 구하려 할 것이요, 또 여성 자신들은 바람직한 여성상을 본문에 의지하여 형성해 가려 고 노력한다면 얼마나 건실한 가정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인가!(허성군 “잠언 31:10-31에 대한 시형 연구” 신학과 목회 영남신학대학 (1987) p.31)


현숙한 여인의 본문을 이렇게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보는 사람들 중에, 어떤 여성 학자는 이 현숙한 여인이 당시에 있었던 여성들의 삶이었고, 또한 그것이 우리네 조상들 의 삶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의 삶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밤낮 쉬지 않고 일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양반입네 하며 실제론 한량인 남편을 떠받 들기까지 하는 고단한 삶을 살아온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의 모습이 그대 로 겹쳐진다. 그랬다. 남성 중심의 가족 이데올로기 안에서 우리의 선조 여 성들은 그러한 삶을 감내했고, 멀리 떨어진 저 땅 이스라엘 선조 할머니들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김기동, "잠언 31장 유감" 새가정, 새가정사 통권 55권 (2008) p. 43)


우리네 어머니들도, 또한 이스라엘의 고대 어머니들도 일하지 않는 한량을 먹여 살리는 여인의 삶, 즉 잠언 31장에 나오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현숙한 여인의 삶은 이것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명령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고까지 해석하고 있다. 만약에 이것을 명령으로 이해한다면 이것은 남성중심 사고의 “여 성 억압적 본문”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분명한 것은 이것을 여성 억압적으로 표현하든, 여성이 가지고 있어야 할 여성상의 기준 으로 생각하던, 남자가 찾도록 노력해야 할 아내의 표본으로 생각하든 “실제적인 여성 상”으로 오랫동안 이해되어 온 것이 가장 큰 흐름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2. 의인화된 지혜로서 “현숙한 여인”


근래에 많은 사람에 의해서 지지 되는 것이 바로 이 해석이다. 본문에 나온 “현 숙한 여인”은 여인의 이상적인 모습 이라기보다는 잠언서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의인 화된 지혜”라는 것이다. 즉, 현숙한 여인은 지혜 자체라고 하는 해석이다.

여성으로 표현되는 의인화된 지혜는 잠언 1장에서 9장까지 뚜렷이 나타난다. 잠 3:13 에서 “지혜를 얻는 자는 복되다”라는 표현에서 “얻는다”라는 단어는 “מצא“로서 현 숙한 여인의 본문을 시작하는 31:10절에 “찾아 얻는다”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이다. 이 단어는 지혜의 의인화가 가장 잘 나타난 8장에 두 번이나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6) 수사학적으로 “누가 찾아 얻겠느냐?”는 말로 시작한 것을 보면, “찾기가 힘들다”라는 표 현일수 있고,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선물이라는 의미를 표현했다고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는” 것으로 시작하는 본문에 나타난 현 숙한 여인의 특징들은 잠언 1-9장 사이에 나오는 의인화된 지혜를 요약 한 것 같은 내용 처럼 보인다.

McCreesh에 따르면 31:10-31에 전체에 나타난 현숙한 여인 모습은 1장에서 9장에 나타난 지혜와 비슷한 언어들로 표현되고 있다고 말한다.7) 또한, 31:30에 있는 현숙한 여인의 특징인 “여호와 경외”야 말로 지혜서에서 나타나고 있는 지혜 자체이며 지혜의 가장 두드러진 모습이 아닌가! 물론, 현숙한 여인을 지혜라고 이야기 할 때, Zuck이 이야기하듯 인간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을 묘사하고 있는 것과, 지혜가 어 머니가 된다는 것, 또한, 26절에 그 입이 지혜를 베푼다는 표현은 “지혜가 지혜를 말하 는 것”이기 때문에, 이 여인이 의인화된 지혜를 표현하기에는 무리하다는8)주장을 무시하 지 않더라도 현숙한 여인은 잠언서에서 말하고 있는, 지혜의 특징, 대부분의 요소를 가지 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지혜는 사람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으로, 마땅히 사랑할 것으로, 마땅히 품어야 할 것으로 나타난다. 마치 부부가 한 몸이 되어서 떨어질 수 없듯이 지혜를 사랑하고, 품 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거기에서 오는 온갖 유익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잠언서 1 장에서 9장까지의 가르침이라면, 아니 더 넓게는 잠언 전체의 가르침이라고 한다면 현숙 한 여인의 본문이 지혜를 말한다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잠언 31장을 단지 여성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게 될 때, 풀어야 할 숙제가 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이곳에서는 남성의 역할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다. 남성의 역할이 전무한 대신에 여성의 역할은 그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 주기에는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 가 싶다. 남성의 역할은 그저 내조 외조를 받아 권력자들과 권세를 누리기만 하는 역할, 즉, 누구의 지적대로 일하지 않는 한량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정치에 몸담고 가정은 돌아보지 않고, 모든 가정생활은 아내에게만 맡기는 지금도 볼 수 있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무시한 정치인이나 사회 활동가들을 나타내는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서 여자는 잘 시간도 없으며, 쉴 시간도 또한 없다. 주로 아비에게 주 어졌던 가르치는 임무도 어머니가 지혜로운 말로 가르치는 것을 보면 (31:26) 여자의 역 할과 남자의 역할이 너무도 조화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가정에서 남자가 하는 것은 단지 자기 아내를 “칭찬”하는 것뿐으로 보인다.

누구의 표현대로 일하지 않는 소위 “양반” 혹은 “한량”을 섬기는 억압적 여인 상의 표현일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상의 기준으로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여인상으로 가르쳐지게 된다면, 여자가 하는 일은 무리가 있을 정도로 도에 지나치는 반면, 남자가 해야만 하는 일은 “내조를 받고” “칭찬”하는 일 외에는 없는 듯이 보인다. 그렇게 해석하면, 본문에서 남성에게 향한 두 가지 명령을 발견할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러한 여인을 얻도록 노력하라 둘째, 이러한 여인의 활약과 성품과 일을 칭찬하라. 이렇 듯이 여성의 역할은 극대 되어 있는 것에 반해 남성의 역할이 보잘 것 없다면 형평성 없 는 명령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본인만의 생각인가? 남성의 역할이 전무하고 여성의 역 할만 나타난 가정과 비즈니스는 오히려 좋은 가정의 모습이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상적인 여성상”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해야 할 것은, 잠언서 전체에서 흐르는 분위기를 볼 때, 여성상으로 보기 보다는 지혜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것이다. 잠언서 전체, 지혜서는 지혜 자 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혜로운 삶에 대한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하고 있다. 그런 데, 지혜에 대한 말씀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책인 잠언의 마지막장, 즉, 결론을 “여인상” 으로 끝내고 있다는 것은 잠언 전체의 결말로는 어색하게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현숙 한 여인을 어떤 사람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잠언서 전체에 흐르고 있는 의인화의 은유적인 표현이다. 지혜를 더 아름 답게, 실천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며 끝맺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좋지 않겠는 가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두자음시, 즉 알파벳 형식의 시(acrostic)의 형태로 잠언 을 끝내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에 관한 두자음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일찍부터 이스 라엘 사람들은 가정과 사회에 있어서 여성의 가치와 그 중요성을 깊이 깨달아 알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히브리 시에 있어서 두자음의 시 형태를 가진 것은 그 리 많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두자음시는 시편 119편이라 할 수 있다. 두자음시를 짓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잘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기억시키기 위해서 지은 시인데, 그 것이 하나님에 대한 것도 아니고, 율법도 아니고, 단지 여인에 관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또한 완전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예레미야 애가의 4편의 시가 두자음 시로 지어진 것은 애가가 특별한 시기에 공 동체에서 전체적으로 같이 암송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또한 완전한 알파벳 체계를 사 용함으로서 슬픔이 완전하다는 것을 표현한것이라고 하고, 또한 시편 119편의 두자음 시 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면 무리가 있을까? 잠언의 결론을 맺으면서 지혜를 사람으로 의인화 시키면서, 지혜에 대해서 잘 기억하기를 바라 고, 또한 이 지혜가 완전하다는 것을 두자음 시로 표현하려 했다면 오히려 더 의미 있는 해석이라고 볼수 있지 않겠는가?

현숙한 여인에 대한 말씀을 여자가 읽으면 스스로 열등감을 가지지 않을 사람을 없을 것이고, 미혼남자가 이런 여인을 찿아서 결혼을 하려면 결혼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듯이 보이며, 아내가 있는 남편이 현숙한 여인과 자기 아내를 비교하는 순간 내 아내는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아내라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여자로서는 이러한 여자가 되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런 여자가 된다면 여자로서는 완벽하다 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아니 완벽 이상의 도가 지나칠 정도의 완벽함이다. 남자가 이런 현숙한 여자와 결혼하면, 더 이상 무엇을 원하 겠는가? 지금의 아내가 이런 모습이 아니더라도, 남편도 실망하지 말고, 기대하면서 이러 한 아내를 만들기 위해서 애쓴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현숙한 여인을 “실제적인 여성상”과 “의인화된 지혜” 두 가지로 다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구태여 한 가지만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본인도 이때 까지 있어왔던 “이상정적 여성상”으로서의 현숙한 여인을 완전히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 다. 그렇지만, 역시 앞에서 이야기 했듯 이 현숙한 여인은 의인화된 지혜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게 본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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